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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보
감독 : 크레이스 질레스피
제작 : 제임스 건, 피터 사프란
출연 : 밀리 알콕, 데이비드 코런스웻 외
제임스 건이 새로운 DC 유니버스(DCU)를 시작하며 두 번째 작품의 주인공으로 선택한 인물은 의외였다. 모두가 슈퍼맨의 시대를 예상했지만, 그가 내세운 카드는 고향을 잃고 우주를 떠도는 슈퍼걸, 카라 조엘이었다.
이 선택은 단순히 새로운 캐릭터를 소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영화는 "왜 같은 크립톤인 인데 슈퍼맨과 슈퍼걸은 전혀 다른 영웅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답을 초능력이 아닌 상실과 성장 환경, 그리고 부모에게서 배운 가치관에서 찾는다.
<아이, 토냐>와 <크루엘라>를 연출한 크레이그 질레스피 감독 역시 이러한 방향에 힘을 싣는다. 거대한 액션과 화려한 CG(컴퓨터 그래픽)보다 인물의 감정과 관계를 차분히 따라가며, 슈퍼걸을 세상을 구하는 초인이 아니라 상처를 견디며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그려낸다.
상실은 어떻게 슈퍼걸을 바꾸었을까
슈퍼맨과 슈퍼걸은 같은 크립토인의 혈통을 이어받았지만, 삶의 출발점은 완전히 달랐다.
슈퍼맨은 어린 시절 지구에 도착해 캔자스의 따뜻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양부모의 사랑 속에서 인간의 삶을 자연스럽게 배웠고, 지구를 자신의 고향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사람을 지키는 일은 특별한 사명이 아니라 너무도 당연한 선택이 된다.
반면 슈퍼걸은 크립톤의 멸망을 직접 목격한 생존자다. 부모와 고향을 잃고, 무너져가는 행성의 기억을 품은 채 오랜 시간을 우주에서 떠돌았다. 뒤늦게 도착한 지구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 아니라 낯선 이방인의 세계였다. 같은 능력을 지녔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차이는 영화가 가장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지점이다.
| 슈퍼맨 | 슈퍼걸 |
| 사랑 받으며 성장 | 멸망한 행성의 생존자 |
| 인간 사회에 자연스럽게 적응 | 세상과 거리를 두는 이방인 |
| 희망과 책임을 선택 | 상실과냉소를 품고 살아감 |
하지만 영화는 상실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카라의 부모는 딸이 위대한 영웅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누구보다 강한 힘을 가졌더라도 끝까지 선한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이 짧은 가르침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메시지다.
결국 카라를 만든 것은 초능력이 아니었다. 고향을 잃은 상실의 기억과 부모가 남긴 가치가 그녀의 삶을 이끌었고, 그것이 슈퍼맨과는 전혀 다른 영웅을 탄생시킨 출발점이 된다.
상실을 마주한 순간, 배드에스(Badass)가 태어나다
슈퍼걸은 자신의 능력이 사라지는 빨간 태양 아래의 행성을 찾아 술을 마신다. 무적에 가까운 힘을 가진 존재가 굳이 평범한 사람이 되려는 선택은 아이러니하지만, 그만큼 그녀가 과거의 상실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힘은 누구보다 강하지만, 마음만큼은 여전히 상처 입은 생존자인 셈이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강한 힘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아픔까지 견뎌야 하는 것일까. 카라는 초인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살아가기보다, 잠시라도 평범한 존재가 되어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려 한다.
이러한 변화의 시작에는 루스라는 소녀가 있다. 부모의 복수를 위해 칼을 든 루스를 처음 만났을 때 카라는 타인의 비극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냉소와 거리감이 그녀를 쉽게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도적단에게 자신의 우주선과 반려견 크립토를 빼앗기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특히 크립토가 생명의 위협에 처하는 순간, 카라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이 선택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다. 과거에는 고향과 부모를 지키지 못했던 카라가 이번만큼은 소중한 존재를 잃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이다. 루스를 돕는 일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녀는 루스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발견했고, 누군가의 상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로 선택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핵심은 거대한 전투가 아니다. 서로 다른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이 진정한 영웅으로 성장해 가는 여정에 있다.
결국 카라를 움직인 것은 초능력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가치관이었다. 그리고 그 가치관은 그녀를 기존 히어로와는 전혀 다른 길로 이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가 말하는 '배드에스(Badass)'의 의미가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다.
왜 슈퍼걸은 '배드에스(Badass)' 히어로인가
'배드에스(Badass)'는 단순히 거칠고 폭력적인 인물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며, 두려움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영화가 그리는 슈퍼걸 역시 여기에 가깝다.
슈퍼맨이 책임과 절제를 우선하는 영웅이라면, 카라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행동한다. 때로는 충동적이고 거칠어 보이지만, 소중한 사람을 지키겠다는 기준만큼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다. 그녀의 거침은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상실을 견디며 스스로 선택한 가치관에서 나온 행동이다.
그래서 슈퍼걸은 기존 히어로와는 다른 매력을 가진다. 정의를 위해 희생하는 영웅이기 전에, 상처를 안고도 다시 일어서는 한 사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영화는 화려한 액션보다 이러한 감정의 변화를 따라가며, 새로운 DC 유니버스가 지향하는 영웅상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제시한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캐릭터의 내면에 집중한 만큼 액션의 비중은 기대보다 적고, 일부 장면은 전개가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 덕분에 슈퍼걸은 '여성 슈퍼맨'이 아니라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독립적인 캐릭터로 자리 잡는다.
총평
<슈퍼걸>은 단순히 새로운 히어로를 소개하는 영화가 아니다. 같은 능력을 지녔더라도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고, 어떤 상실을 겪었으며, 어떤 가치를 선택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슈퍼맨이 희망을 상징하는 영웅이라면, 슈퍼걸은 상처를 안고도 앞으로 걸어가는 영웅이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 오래 남는 것은 거대한 전투 장면이 아니라, 영웅을 만드는 것은 강한 힘이 아니라 삶 속에서 선택한 가치관이라는 메시지다.
제임스 건이 새로운 DC 유니버스의 두 번째 주인공으로 슈퍼걸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는 완벽한 영웅보다 상처를 견디며 성장하는 영웅을 통해, 앞으로 DC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고자 한다.
완벽한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기존 히어로 영화의 공식을 답습하기보다 새로운 영웅의 얼굴을 보여주려는 시도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상실이 만든 '배드에스(Badass)' 히어로. 그것이 <슈퍼걸>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