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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보
감독 : 박찬욱
장르 : 스릴러, 블랙 코미디
출연 : 이병헌, 손예진 등
개봉 : 2025년 9월 24일
러닝터임 : 158분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 (원제 No Other Choice)를 보고 나온 사람들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갈립니다. 어떤 사람은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왜 재미없다는 평이 많은지 알겠다"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9분간 기립박수를 받았고, 로튼토마토에서는 리뷰 44개 전부가 신선도 지수를 기록할 만큼 해외 평단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정작 국내 관객 사이에서는 "지루하다", "몰입이 안 된다"는 말이 유독 많이 나옵니다. 이 간극이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왜 그 '재미없음'이 사실은 이 영화가 의도한 효과에 가까운지를 짚어보려 합니다.
이야기 자체는 단순하다
25년간 제지회사 '태양제지'에서 일해온 만수(이병헌)는 어느 날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회사 측이 그에게 건네는 말은 "미안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라는 한 문장뿐입니다. 아내 미리(손예진)와 두 아이, 그리고 그동안 쌓아온 중산층의 삶을 지키기 위해 만수는 석 달 안에 재취업하겠다고 다짐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지원한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다른 구직자들, 즉 자신과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을 하나씩 제거하기로 결심합니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스릴러의 골격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면 스릴러가 주는 쾌감이나 서스펜스보다는 어딘가 불편하고 서늘한 뒷맛이 남습니다. 이게 바로 관객들이 "재미없다"라고 말하는 지점과 맞닿아 있습니다.
감정이입을 허락하지 않는 연출
일반적인 상업영화는 관객이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도록 설계됩니다. 주인공이 위기에 처하면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주인공이 승리하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박찬욱 감독의 화법은 이 공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가장 극적이어야 할 순간, 감정이 폭발해야 할 장면일수록 카메라는 오히려 한 발짝 물러서서 인물을 관찰하듯 담아냅니다. 그 결과 관객은 만수의 감정에 자연스럽게 휩쓸리기보다, "지금 이 상황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를 계속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위치에 놓입니다.
이건 연출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관객을 그저 감정에 이끌려 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해석하는 존재로 대우하겠다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다만 이런 방식이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몰입이 안 된다",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인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고, 그게 곧 "재미없다"는 평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블랙코미디라는 장르가 하는 일
이 영화를 스릴러로만 기대하고 본 관객이라면 당황할 수 있습니다. <어쩔수가없다>의 진짜 정체성은 블랙코미디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블랙코미디는 원래 극단적인 상황을 끝까지 밀어붙여서 그 안에서 웃지도 울지도 못할 아이러니를 끄집어내는 장르입니다. 만수가 살인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은 절박하고 처절하지만, 동시에 어딘가 우스꽝스럽고 헛헛하게 그려집니다. 옥상에서 화분에 물을 주다가 그 물이 자기 머리 위로 흘러내리는 순간처럼, 진지해야 할 장면에 예상치 못한 우스꽝스러움이 끼어드는 식입니다.
문제는 관객이 이 장르적 신호를 놓치고 "이건 심각한 이야기니까 심각하게 봐야 한다"는 태도로 접근할 때 생깁니다. 그럴 경우 영화가 의도한 아이러니와 블랙코미디의 쾌감을 놓치고, 그저 불편하고 답답한 이야기로만 받아들이게 됩니다.
캐스팅이라는 또 하나의 낯설게 하기
감정이입을 차단하는 카메라,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블랙코미디적 화법에 이어, 낯섦을 만드는 세 번째 장치는 캐스팅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배우가 관객에게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이미지를 뒤집어쓰는 데 능한 연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쩔수가없다>에서도 관객이 익숙하게 떠올리는 배우들의 이미지가 의도적으로 어긋나며 낯선 인물로 재조립됩니다. 이런 캐스팅 전략은 관객이 배우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을 흔들어, 인물을 다시 낯설게 바라보게 만드는 효과를 냅니다. 결국 연출, 장르, 캐스팅까지, 이 영화는 세 겹으로 관객을 익숙함에서 계속 밀어냅니다.
해고, 그리고 노동자가 노동자를 겨누는 세상
그렇다면 박찬욱 감독은 이렇게까지 관객을 낯설게 만들어서 결국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요. 이 영화가 단순한 장르물을 넘어서는 지점은 노동에 대한 시선입니다. 만수와 그가 제거하려는 경쟁자들은 모두 같은 업계에서 수십 년을 일해온 숙련 노동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전문성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말하는 현실은 냉정합니다. 아무리 오랜 경력과 전문성을 쌓아도, 노동시장에서 그들은 언제든 대체 가능한 '부품'이자 '상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더 씁쓸한 지점은 만수가 결국 공격하는 대상이 자신의 일자리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산업 구조나 기술이 아니라,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 놓인 또 다른 노동자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원작 소설이 쓰인 1990년대 미국의 구조조정 시대와도 맞닿아 있지만, 지금 이 영화가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훨씬 더 동시대적인 울림을 갖습니다. 종이의 시대가 저물고 있듯, 만수의 전문성 역시 저물어가는 산업 위에 서 있고, 그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것은 기계나 인공지능이 아니라 결국 사람입니다.
결국, '어쩔수가없다'는 말은 반어법이다
제목부터가 하나의 함정입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은 표면적으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체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만수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집을 팔 수도, 아내의 경력 복귀를 도울 수도, 자존심을 잠시 접고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오직 하나의 길, 가장 극단적인 길만을 선택합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그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한 자기 합리화에 가깝고, 제목에 띄어쓰기 없이 붙여 쓴 것도 이 말이 마치 습관적인 감탄사처럼 아무 생각 없이 튀어나오는 말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읽힙니다.
마지막 장면이 진짜 무섭다: 승리가 아니라 유예
이 영화의 낯섦은 사실 마지막 장면에서 정점을 찍습니다. 앞서 짚었던 감정이입 차단, 블랙코미디, 캐스팅, 노동에 대한 냉정한 시선이 모두 모여서 향하는 종착점이 바로 이 엔딩입니다. 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은 사실 살인 장면들이 아닙니다. 만수가 그토록 원하던 재취업에 성공하고 마침내 새 일터에 들어선 순간, 화면을 가득 채우는 건 사람이 아니라 업무를 처리하는 커다란 기계들이고, 그 사이에 인간은 단 한 명뿐입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지금 이 일은 사람이 하는 걸까요, 기계가 하는 걸까요. 그리고 이 자리는 앞으로 얼마나 오래 사람의 것일까요.
만수는 사람을 해치면서까지 그 자리 하나를 지켜냈는데, 정작 카메라가 마지막에 보여주는 건 그 자리 자체가 이미 기계 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승리의 장면이 아니라 유예의 장면에 가깝습니다. 만수는 이번 싸움에서는 이겼지만, 진짜 상대는 아직 등장하지도 않은 셈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을 보면서 어릴 때 <에일리언>, <더 씽>을 보며 자란 세대로서 가졌던 두려움이 떠올랐습니다. 그 시절엔 "외계 생명체가 정말 온다면 어떡하나"라는 상상이 공포의 원형이었습니다. 그런데 <터미네이터>를 처음 봤을 때, 그 두려움의 자리가 완전히 옮겨갔다는 걸 느꼈습니다. 처음엔 그냥 신선하고 충격적인 소재라고만 생각했는데, 40여 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건 단순한 SF적 상상이 아니라 정확한 예언에 가까웠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로봇, 그리고 그보다 더 형체 없는 AI와 자리를 나눠 써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요.
외계인에서 로봇으로, 그리고 지금은 AI로. 인류가 상상해 온 두려움의 대상은 계속 자리를 옮겨왔지만,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와 다른 무언가가 내 자리를, 내 삶의 방식을 통째로 대체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입니다. <어쩔수가없다>의 마지막 장면은 그 오래된 불안을 가장 조용하고 담담한 방식으로 스크린 위에 올려놓습니다. 만수가 지켜낸 자리 앞에서 우리가 떠올리게 되는 건 결국 하나의 질문입니다. 내 자리는, 앞으로도 계속 내 것일까요.

정리하며
<어쩔수가없다>가 "재미없다"는 평을 듣는 이유는 이 영화가 못 만들어서가 아니라, 관객에게 익숙한 몰입의 문법을 의도적으로 비틀기 때문입니다. 감정이입을 차단하는 연출, 심각함과 우스꽝스러움을 뒤섞는 블랙코미디의 화법, 그리고 노동과 생존에 대한 냉정한 시선까지, 이 영화는 편하게 소비되기를 거부합니다. 다만 그 낯섦을 견디고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이 영화가 남기는 질문—전문성과 안정된 직장, 중산층의 삶이라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얇은 얼음판 위에 서 있는가, 그리고 그 자리마저도 결국 사람이 아니라 기계의 것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은 꽤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