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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보
감독: 필 로드, 크리스토퍼 밀러
원작: 앤디 위어 《프로젝트 헤일메리》
출연: 라이언 고슬링, 산드라 휠러 외
국내 개봉 : 2026년 3월 18일
러닝타임: 156분

눈을 떴는데, 내가 누군지 모른다면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관객을 당황하게 만드는 설정이 하나 있습니다. 주인공이 낯선 공간에서 깨어나는데, 정작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겁니다.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조금씩 기억의 조각을 맞춰가던 그는 자신이 과학을 가르치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방 안에는 자신 말고도 두 구의 시신이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구 전체를 위협하는 거대한 위기와 만나게 됩니다.
흥미로운 건 기억상실이라는 설정이 단순히 초반의 미스터리를 만들기 위한 장치로만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기억을 하나씩 되찾는 과정은 동시에 자신이 왜 이 임무에 참여하게 되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시작은 거대한 우주 재난 영화라기보다, 한 사람이 잃어버린 자신을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태양이 죽어가고 있다는 설정
이 영화의 핵심 아이디어는 태양이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있다는 설정에서 출발합니다.
원인은 지구에서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미생물 형태의 생명체입니다. 이 생명체가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지구의 기온은 떨어지고,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기 시작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가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한 임무가 바로 영화 제목이기도 한 '헤일메리 작전'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형적인 재난 SF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위기가 지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확장됩니다.
멀리 떨어진 다른 항성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측되고, 유독 한 별만 이상하리만치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단서가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그 답을 찾기 위해 우주로 떠납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존재와 마주하게 됩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직접 보는 재미를 위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만남이야말로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단순한 우주 생존 영화와 다른 길을 선택하는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션과 닮은 듯 다른 이야기
앤디 위어라는 이름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마션>이 떠오릅니다.
<마션>은 화성에 홀로 남겨진 사람이 오직 과학적 사고와 지식을 이용해 눈앞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번 작품 역시 '혼자 남겨진 과학자가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간다'는 기본적인 뼈대는 비슷합니다.
하지만 두 작품의 재미는 상당히 다릅니다.
<마션>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집중했다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서로 전혀 다른 존재가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기억을 되찾아가는 개인적인 이야기와 눈앞에 닥친 우주적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 임무가 동시에 진행되고, 어느 순간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면서 영화의 성격 자체가 달라집니다.
이 과정에서 과학적인 설명도 상당히 많이 등장합니다.
왜 지구의 기온이 떨어지는 것이 인류에게 치명적인지, 이 미생물의 정체는 무엇인지, 헤일메리 작전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등을 관객이 따라가야 합니다.
다만 원작과 비교하면 영화는 이 복잡한 과학적 문제를 훨씬 빠르게 지나갑니다.
원작 팬이라면 아쉬울 수 있는 부분
개인적으로 원작 소설을 먼저 읽었던 입장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바로 이것입니다.
소설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들을 순전히 논리와 과학적 방법론으로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지적인 쾌감에 있었습니다.
문제를 만나면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다른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과 함께 하나의 퍼즐을 풀어나가는 듯한 재미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상당히 압축됐습니다.
러닝타임의 한계도 있었겠지만, 복잡한 과학적 인과관계를 관객이 오랫동안 따라가도록 하기보다는 짧은 설명이나 몽타주를 통해 빠르게 넘어가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원작에서 느꼈던 '두뇌 싸움'을 가장 기대했던 분이라면 다소 심심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비워낸 그 자리를 다른 것으로 채웠다는 점입니다.
바로 감정선입니다.
소설에서 과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중심이었다면, 영화에서는 서로 전혀 다른 존재가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더 많은 무게가 실립니다.
그래서 원작과 영화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관객에게 남기는 감정은 조금 다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좋은 이유
제가 이 영화를 좋게 본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요즘 나오는 SF 작품 중에는 우주를 상당히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계 문명을 만나면 상대가 나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공격해야 한다는 '어둠의 숲' 논리를 다루는 작품들이 대표적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꽤 낙관적인 영화입니다.
서로 다른 존재가 반드시 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공동의 위기 앞에서는 국경이나 종족의 차이를 넘어 협력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처음에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문제입니다.
언어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저는 이 부분이 이 영화의 가장 따뜻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결국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아주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으며, 신뢰가 쌓이면 처음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관계까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국 우선주의와 혐오의 정서가 곳곳에서 두드러지는 요즘 같은 시기에 이런 이야기를 스크린에서 만나는 경험은 생각보다 뭉클합니다.
156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은 이유
러닝타임은 156분으로 짧은 편이 아닙니다.
SF 영화는 세계관과 과학적 설정을 설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중반부터 이야기가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기억을 되찾는 과정과 우주에서의 임무를 함께 진행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한쪽에서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과거의 기억을 되찾아야 합니다.
덕분에 하나의 이야기가 계속 반복된다는 느낌이 비교적 적습니다.
여기에 중간중간 배치된 유머도 영화의 분위기를 적절하게 환기시킵니다.
라이언 고슬링의 연기도 이런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지나치게 영웅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당황하고 실수하면서도 결국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인물을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무거운 우주 재난을 다루면서도 영화 전체가 지나치게 어둡게 가라앉지 않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아이맥스가 아니어도 괜찮은 이유
영화의 상당 부분이 아이맥스 포맷으로 촬영됐다고 알려져 있어 큰 화면에서 봐야 하는 작품인지 고민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우주의 광활함과 영화가 보여주는 스케일을 생각하면 큰 화면에서 보는 재미는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가장 힘을 준 부분은 시각적인 스펙터클보다는 인물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와 감정선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아이맥스로 볼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일반 상영관에서 본다고 해서 영화의 핵심적인 재미를 놓치는 작품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중요한 장면에서는 화면의 크기보다 인물의 표정과 대화, 그리고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원작과 영화 중 어느 쪽이 더 좋을까?
원작과 영화를 모두 접한 제 입장에서는 어느 한쪽이 무조건 더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소설은 과학적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오는 지적인 쾌감이 훨씬 큽니다.
반면 영화는 복잡한 과학적 설명을 덜어낸 대신 인물 간의 관계와 감정에 더 많은 힘을 줍니다.
그래서 과학적 추론과 하드 SF를 좋아한다면 원작이 더 잘 맞을 가능성이 높고, SF의 세계관과 함께 인간적인 관계와 감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영화 쪽이 더 편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원작을 먼저 읽었기 때문에 과학적인 문제 해결 과정이 압축된 부분은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원작에서 느꼈던 지적인 재미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다시 경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SF를 좋아한다고 해서 모두에게 똑같이 재미있는 영화는 아닐 것 같습니다.
원작처럼 복잡한 과학적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과정을 가장 기대하는 분이라면 영화가 조금 단순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SF를 좋아하지만 지나치게 복잡한 과학 설명 때문에 쉽게 지치는 분, 외계 생명체와 인간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영화 쪽이 오히려 더 편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특히 서로 전혀 다른 존재가 어떻게 신뢰를 쌓을 수 있는지, 그리고 공동의 위기 앞에서 협력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추천하고 싶습니다.
한 줄 총평
과학적 엄밀함보다는 정서적 울림에 방점을 찍은 SF.
저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뇌를 채우기보다 마음을 데우는 SF'라고 정리하고 싶습니다.
원작의 하드 SF적 재미를 기대했던 분들에게는 다소 아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신뢰와 협력, 우정과 연대라는 따뜻한 이야기로 채웠다는 점에서 영화만의 가치도 분명합니다.
결국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인류가 우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서로 너무나 다른 존재라도 함께 살아남을 방법을 찾을 수 있는가.
그리고 영화는 그 질문에 꽤 낙관적인 답을 내놓습니다.
그래서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우주를 배경으로 했지만, 결국 사람과 관계에 관한 영화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여러분은 <프로젝트 헤일메리> 보셨나요? 원작 소설과 영화를 모두 보셨다면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들었는지, 또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댓글로 이야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